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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해원(解寃), 그리고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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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7-11 08:00:11   폰트크기 변경      

황경식(시인)

최근 가장 인상 깊게 본 드라마 중 하나는 한 케이블에서 방송한 ‘기억’이라는 작품이었다. 주인공인 변호사 박태석이 알츠하이머에 걸려 점점 기억을 잃어가면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사정이 표면적인 구조였다. 하지만 보다 심층적인 주제는 그렇게 사라지는 기억 속에서도 도저히 잊어버릴 수 없는 기막힌 사연이 주인공의 가슴 속에 커다란 바위처럼 박혀 있다는 이야기였다.

바로 15년 전 뺑소니로 인한 아들 동우의 억울한 죽음이었다. 국내 최고 로펌 ‘태선’에서도 가장 잘나가는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는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슬픔이었다. 그 아득하고 먹먹한 아픔이 다른 모든 기억들이 사라질수록 더욱 선명하고 뚜렷하게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수많은 우여곡절과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태석은 그 뺑소니의 가해자가 뜻밖의 인물임을 알게 된다. 태선의 대표변호사이자 평소 형님처럼 생각했던 이찬무의 아들 승호였다. 많은 세월이 지났고 그동안 자신에게 크나큰 도움을 준 이찬무에다, 승호 역시 조카나 동생같이 여겨왔지만 태석은 도저히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주변의 지적도 소용 없었다. 갖은 간난신고 끝에 태석은 승호가 범인임을 입증했고 그동안 죄책감으로 지독한 고초를 겪어온 승호에게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너를 용서할 수 없다. 네 스스로 잘못을 통감하고 고백하고 속죄를 받도록 해야 한다.”

실은 승호도 진작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지만 집안의 명예와 승호의 미래를 걱정한 아버지와 할머니의 방해로 그러지 못했다. 이에 승호는 가족들의 만류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태석에게 잘못을 빌고 멀리 네팔로 자원봉사를 떠난다. 여기서 우리는 용서와 화해를 위한 중요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먼저 피해자가 마음을 풀어야 한다. 해원(解寃)이다. 그래야 용서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려면 사건의 전말을 알아야 한다. 그런 과정 속에 범인이 밝혀지고 범인이 진심으로 뉘우칠 때 비로소 용서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시간이 지났으니 잊어버리라는 것은 너무 안일한 접근방식이다. 피해자의 일방적인 선의를 손쉽게 기대해서도 안 된다. 우선 가해자가 달라져야 하고 그보다 사건의 진상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우리 현대사에 매듭 매듭 묶여있는 많은 피맺힌 사건들, 그리고 세월호 사건의 해결에서도 우리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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