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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오래된 미래
기사입력 2020-07-03 05:00:13.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김태형 산업2부 차장
   

종로ㆍ을지로 등 서울의 오래된 거리를 종로 토박이라는 모 건설사 부장과 ‘짤막 투어’했다. 골목 구석구석이 옛것 속에 미래를 품고 있는 ‘오래된 미래’의 현장들이다.

을지로 공구상가 거리는 우주선, 탱크도 만든다는 종로 세운상가와 더불어 1970∼80년대를 풍미한 ‘한국판 실리콘밸리’였다. 아이폰을 탄생시킨 스티브 잡스의 차고지와 비슷하다. 공구상가를 놀이터삼아 컸던 이 부장의 대입 지원서 1순위는 모조리 ‘공대’였다. 최근 을지로 노포(老鋪ㆍ대를 이어 운영하는 오래된 가게) 식당은 유동인구가 많은 ‘핫플레이스’ 대신, 개성있고 세련된 상권을 뜻하는 ‘힙(hip)플레이스’로 거듭났다. 20ㆍ30대가 을지로 노포를 자주 찾으면서 ‘힙지로’라는 새 별명이 생겼다. 철거 논란 속에 옛것의 대명사가 된 ‘을지면옥’의 평양냉면 맛은 여전히 일품이다.

세운상가와 함께 국내 1세대 주상복합 건물인 낙원상가로 발길을 돌렸다. 1969년 준공된 낙원상가는 주거와 상업 시설을 모두 갖춘 최고급 주거공간으로, 유명 연예인과 부호들의 사랑을 받았다. 지하 1층에는 지금의 대형마트 격인 시장이, 2층에는 악기상가, 4층에는 허리우드극장(현 실버영화관)이 각각 자리잡았다. 요새 웬만한 주상복합에도 밀리지 않는 포트폴리오다.

화려한 종로대로 뒷골목은 서울 5대 쪽방촌 중 하나인 ‘돈의동 쪽방촌’이다. 비좁은 골목길 사이사이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쪽방촌은 1층보다 2층이 더 큰 불안한 건축물들의 집합소다. 과거엔 홍등가 성매매 여성들의 위태로운 둥지였고, 지금은 지방에서 올라온 노동자와 도시 빈민 600여명이 모여 산다. 골목마다 꼭 2가지가 비치돼 있다. 소화기와 화분. 화초야말로 도심 속 공원처럼 빈민촌의 분노를 잠재우는 ‘자연 소화기’다.

북촌 한옥 마을, 삼청동, 가회동 등 옛 한옥마을에는 원조 공공 디벨로퍼로 불리는 ‘건축왕’ 정세권 선생(1888∼1965)의 발자취가 묻어 있다. 이 부동산업자는 일본인에게 떠밀려 주거지를 잃을 처지에 놓인 조선인들을 위해 대규모 한옥단지를 건설했다. 토지 매입과 택지 조성, 건축까지 한꺼번에 단행한 일종의 ‘뉴타운’이자 ‘도시정비사업’의 선도모델이다.

서울 만이 아니다. 경북 경주시 구황동 황룡사지. 신라 선덕여왕 14년(645년) 국가 최대 사찰에 세워진 높이 225자(80m)의 9층짜리 목탑이 있던 자리다. 타워크레인도 없던 시절에 25층짜리 아파트를 지은 셈이다. 당시 기술수준을 고려하면 지금의 250층짜리 건축물과 맞먹는다. 9층 목탑은 백제의 장인을 스카우트하고, 인도와 중국의 선진기술을 집약해 만든 초대형 글로벌 프로젝트였다. 1200억원을 들여 복원을 추진 중인 황룡사 9층 목탑은 지난 4월30일 부처님 오신날에 국난(코로나19) 극복의 염원을 담아 서울광화문에 봉축탑으로 재등장했다. 오래 전 선배들이 직조한 옛것에는 과거로 돌아가려는 뒷걸음질이 아닌 미래로 성큼성큼 달려가는 발자국이 곳곳에 숨어 있다.

김태형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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