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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③건설기술인 옥죄는 불합리한 법과 제도] 행정편의적 규제 탈피해야
기사입력 2019-12-04 06:30:13.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건설산업의 모든 사고ㆍ분쟁은 박한 공사비에서 출발

규제 강화가 아닌,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먼저

벌점제도ㆍ양벌규정ㆍ중복규제 등도 개선 대상

 

 

   
정부는사고ㆍ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업게에서는 적정공사비 지급 등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먼저라고 강조한다. 사진은 지난해 5월 전국 건설인들이 국회 앞에 모여 적정공사비 확보를 외치는 모습.

 

지난달 20일 건설업계는 청와대와 국회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건설단체총연합회 이름으로 제출한 탄원서는 발주자 귀책사유로 인해 공사기간이 연장될 경우 추가 비용을 지급해 달라는 것이었다.

현재 관계법령에는 예산 부족 등 계약상대자의 책임이 없는 사유로 인해 공사기간이 연장되어 추가 비용이 발생한 경우, 발주기관이 해당 비용을 실비로 지급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장에서는 법령 취지와 달리, 비용 지급을 기피하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원ㆍ하도급자의 경영악화, 근로자 임금체불 등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건단련의 주장이다.

뿐만 아니다. 태풍ㆍ혹한ㆍ폭염ㆍ미세먼지 등 날씨 변수로 인해 공사기간 맞추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지만, 현행 ‘공기 산정기준’에는 준비기간과 작업일수, 표준작업량 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주 52시간으로 대변되는 탄력근무제 시행은 공기 준수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공사일수 부족으로 돌관공사가 발생하면 인력 부족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외국인 불법고용 등 부작용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 모든 게 적정공사비 미지급에서 출발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가령 100원의 예산이 확보된 공사는 △조달청 총사업비 검토 △발주기관 자체 조정 △주무부처 검토 △기재부 총사업비 검토 △발주기관 최종 검토 등을 차례로 거치면서 86.53원에 발주된다. 발주과정에서만 13.47원이 깎이는 셈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원도급 및 하도급 계약에는 낙찰률이 적용된다. 어느 정도 낙찰률이 보장되는 적격심사낙찰제(87.1%)를 적용해도 원도급 계약은 75.37원에 체결된다. 여기에 표준하도급률(82%)을 적용하면 하도급 계약은 61.80원에 이루어진다. 예산(설계) 대비 각각 75%, 61%에 공사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박한 공사비는 결국 원ㆍ하도급 간 분쟁으로 어이지기 십상이다. 건설업계가 적정공사비 확보, 공사비 현실화를 지속적으로 외치는 이유다. 건단련을 중심으로 한 전국 건설인 7000여명은 지난해 5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도로에서 ‘전국 건설인 대국민호소대회’를 열고 적정공사비 확보를 외치기도 했다.

반면 박한 공사비에 불구하고 건설사와 건설기술인의 책임은 늘어만 간다. 정부는 올해 건설현장 사망사고 절반 줄이기 캠페인을 벌이면서 건설사에 안전관리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내년에는 산업재해 발생 시 처벌이 한층 강화된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박한 공사비에 손실을 보지 않으려면 공사를 빨리빨리 진행할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면 사고가 발생하기 마련”이라면서 “사망사고를 줄이려면 처벌을 강화하기보다 적정한 공사비와 공사기간을 산정하는 것이 먼저”라고 호소했다. 규제 강화 정책은 한계가 있으며, 안전하게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우선적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건설기술인도 정부의 규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벌점제도ㆍ양벌규정ㆍ중복규제 등이 대표적이다.

벌점제도는 건설공사의 부실시공을 방지하기 위해 1995년 시행됐다. 성실시공을 하지 않거나 고의 또는 과실로 부실공사가 발생할 경우 건설사업자, 주택건설등록업자, 건설기술용역사업자뿐 아니라 해당 기업에 고용된 건설기술인에 대해서도 벌점이 부과된다. 벌점이 누적되면 입찰참가자격사전심사(PQ) 시 감점, 입찰참가 및 선분양 등에 제한이 가해진다.

이에 대해 건설업계와 건설기술인 사이에서는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구체적으로 건설공사 품질 확보를 위해 부실시공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기본취지는 이해하지만, 부실벌점의 전제가 되는 ‘성실시공’이라는 개념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동일한 사안에 이중으로 불이익을 주는 양벌규정도 개선 대상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양벌규정은 위법행위에 대해 행위자 처벌뿐 아니라 업무의 주체인 법인 또는 개인도 함께 처벌하는 규정이다. 건설기술진흥법(제90조)에서는 법인의 대표자나 법인, 사용인, 종업인 등이 위반행위를 하는 경우 개인 이외에 법인 또한 별도의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은 개인과 법인이 동시에 부당한 피해를 입을 개연성이 크다. 특히 개인이 당하는 피해 정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건설기술인이 부실시공으로 벌점을 받으면 당장 생계를 위협받는다. 일례로 설계업무 담당 시 벌점을 받은 건설기술인은 이후 건설사업관리업무로 변경해도 벌점은 그대로 승계되기 때문에 업계에서 퇴출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양벌규정을 삭제하는 내용 등을 담은 건설기술진흥법 개정안이 지난 4월 발의(김상훈 자유한국당 의원)됐지만, 아직 계류 중에 있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두 가지 법률에 의한 중복규제도 건설기술인을 옥죄는 규제 중 하나로 통한다. 하도급 위반에 대해 하도급법과 건설산업기본법에서 중복 처분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도급법이 전 산업에 걸쳐 적용되고 있음에도, 건설분야에서는 건설산업기본법이 같은 사안에 적용됨에 따라 결국 업체나 건설기술인 입장에서는 두 가지 법률로 동시에 제재받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안전이 중요시됨에 따라 산업안전보건법과 건설기술진흥법과의 중복규제도 종종 나타나고 있다.

이와 관련,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산업이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주요 기반 산업인 만큼 안전에 대한 규제는 필요하지만, 건설산업에서는 유독 불합리하고 과도한 규제들이 많다”면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행정편의적으로 촘촘히 규제를 가하기보다 건설기술인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회훈기자 hoony@

〈건설을 보는 눈 경제를 읽는 힘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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