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기획] 한국경제를 일으킨 건설 10선

기사입력 2019-12-09 06:40:10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난 우리나라는 사회적 혼란과 급변하는 세계 정세 가운데에서도 기적과 같은 경제발전을 이루어냈다. 그중에서도 산업기술 분야에서의 괄목할 만한 성장은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한국공학한림원(회장 권오경)은 최근 우리 산업기술의 역사적 성과를 알기쉽게 설명한 <꿈이 만든 나라>를 발간했다. ‘대한민국 산업기술 100장면’이라는 부제의 책은 우리 산업기술이 지나온 발자취를 주요 장면별로 보여준다.

모두가 감동인 100장면 중 건설 분야와 관련된 10개 장면을 추려내 소개한다. 다만, 그동안 많이 다뤄졌고 익히 알려진 경부고속도로와 2000년 이후 건설된 프로젝트 가운데 인천국제공항, 서울월드컵경기장, 경부고속철도, UAE 원전 수출, 롯데월드타워 등은 제외했다. 정회훈기자 hoony@



1. 조선 제일의 다리 ‘한강신인도교’(1936년)

 

 

일제강점기 주요 기술사업은 전적으로 일본인들에 의해 추진되었다. 이러한 차별적 상황에서 1936년 개통한 한강신인도교는 조선인 토목기술자 최경렬(1905∼1975)이 설계한 다리다.

평남 순천에서 태어난 최경렬은 평양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924년 경도제국대학 토목공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조선총독부 내무국 토목과에 취직했다. 뛰어난 역량과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1934년 일본인 기수 2명을 데리고 한강신인도교 설계에 착수한다. 당시 금액으로 300만원이라는 거액이 투입된 조선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였다.

2년여의 공사 끝에 1936년 10월 조선 제일의 다리(1005m)는 완성됐다. 최경렬의 한강신인도교 설계는 해방 이후에도 우리나라 교량공학의 효시 역할을 했다.

 



2. 우리 손으로 만든 첫 번째 화학비료공장 ‘충주비료’(1961년)

 

 

충주시 목행동에 자리했던 충주비료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건설한 한국 최초의 산업체다.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미국 회사와 함께 한 공장건설공사이기도 하다.

건설 추진 방법도 모르는 상태에서 미국 회사의 의견에 따라 공사를 진행하다 보니 적지 않은 문제가 생겼다. 1955년 9월 착공해 1958년 4월 준공 예정이었던 충주비료 공장은 건설을 담당한 ‘맥그로 하이드로카본(McGraw-Hydrocarbon)’과 다섯 차례에 걸쳐 계약을 수정해야 했고, 건설비도 당초 계약한 금액보다 약 70%가 추가되었다. 공사 기간도 21개월이나 연장되는 바람에 1961년 4월29일에야 겨우 준공할 수 있었다.

충주비료는 국내 최초의 요소비료 공장으로 한국 비료 산업의 초석을 놓았다. 건설에 참여한 엔지니어들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추진을 통한 산업화 과정에서 핵심기술 인력으로 활약했다.

 



3. 대한민국 최초의 공업단지 ‘울산석유화학단지’(1972년)

 

 

정부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1971)의 핵심 사업으로 철강단지와 함께 석유화학단지 건설을 선정했다. 이어 울산을 석유화학산업단지로 지정했다. 울산 부영동에 110만평(1차 68만평)의 단지 조성을 마치고, 1968년 3월22일 기공식을 가졌다. 그 후 거의 4년 반의 건설기간 동안 내ㆍ외자 약 2000억원이 투입되어, 제1차로 계획된 사업 중 나프타 분해공장(NCC) 등 9개 공장이 준공됐다.

1972년 10월30일 거대한 플랜트가 빽빽하게 들어선 울산 석유화학공업단지에서 합동 준공식이 거행됐다. 울산 석유화학공업단지는 포항제철(POSCO)과 함께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2015년 기준 국내에는 울산, 여수 및 대산 석유화학단지가 가동 중이며, 에틸렌 생산능력은 연 864만t이다. 우리나라는 2012년부터 일본을 제쳤고 미국, 중국, 사우디 다음으로 세계 4위의 석유화학 강국이 되었다.

 



4. 국내 토목사의 신기원, ‘소양강 다목적댐’(1973년)

 

 

동양 최대 규모(높이 123m, 제방길이 530m)인 소양강댐은 조국 근대화를 상징하는 대역사였다. 소양강댐을 착공한 1967년 당시 정부 예산이 1642억원이었는데, 댐 건설비가 320억원이었다는 사실은 정부의 결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증명한다.

댐은 당초 콘크리트 중력식에서 흙과 모래, 돌을 이용한 사력식으로 전환되어 건설됐다. 중앙에 연필심을 박듯 진흙으로 단단히 다진 다음 모래와 자갈을 차례로 경사지게 쌓아올린 후 마지막에 표면을 암궤로 견고하게 고정시키는 방식으로 축조했다.

당시 국내 언론은 댐을 두고 ‘123미터의 인조산(人造山)’이라고 표현했다. 댐 축조에 들어간 진흙과 모래, 돌은 당시 3500만 국민 한 사람이 일곱 가마니씩 져 날라야 하는 양이었다. 준공 후 오랫동안 ‘댐을 너무 크게 쌓아 국고를 낭비했다’는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1984년 대홍수 때 수도권을 보호하는 댐의 역할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5. 대중교통의 혁명, ‘서울 지하철 1호선’(1974년)

 

 

1974년 8월15일 오전 11시. 청량리역에서는 태극기와 축하화환을 단 108호 열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개통식을 끝낸 열차는 호기심에 가득 찬 시승 인파를 싣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지하 15m 땅속을 시원스레 달려 청량리에서 서울역까지 7.8㎞를 18분 만에 주파했다. 서울 시민들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1971년 4월 착공한 지하철 1호선은 3년 4개월 만에 준공됐다. 지하철 설계ㆍ시공 경험이 전무한 당시로선 매우 어려운 과제였지만, 새로운 공법을 적용하며 난관을 극복했다. 종로∼청량리 구간은 개착식 공법이 적용됐고, 거의 90도로 꺾이는 광화문∼시청 구간은 특수공법이 도입됐다.

도시철도는 시내버스와 함께 가장 중요한 도시 교통수단으로 부상했고, 1985년 10월 3ㆍ4호선이 완전 개통되면서 본격적인 지하철 시대가 열렸다.

 



6. 20세기 최대 건설 프로젝트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 공사’(1976년)

 

 

현대건설이 수행한 주베일 산업항 공사는 20세기 최대 난공사로 불렸다. 쉽게 말해 300m 높이의 산 하나를 깎아 바다에 메우는 셈이었다.

세계 선진 건설업체들이 눈독을 들였고, 사우디 정부는 비밀리 입찰업체들을 선정했다. 이 정보를 현대건설이 입수한 시점은 불과 입찰 7개월 전. 그러나 ‘뚝심’으로 사우디 정부를 설득해 10번째 응찰자 자격을 얻었고, 결국 9억3000만달러의 낙찰가로 공사를 수주했다. 당시 환율로 환산하면 4600억원으로,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의 30%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현대건설은 주베일 공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면서 무한대의 자산을 얻었다. 육상과 해상에서 펼쳐지는 토목 공사는 물론 건축, 전기, 설비 부문과 함께 해상 유조선터미널의 구조물 제작에서부터 수송, 하역, 설치까지 그야말로 총체적인 ‘건설 백과사전’을 통달하게 된 것이다.

철구조물을 울산서 제작한 뒤 바지선에 실어 19차례나 운송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는 아직도 건설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7. 원자력 강국의 첫걸음 ‘고리원전 1호기’(1978년)

 

 

1978년 7월20일. 경남 양산군 장안읍에서는 고리원전 1호기의 준공식이 열렸다.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전력 임직원과 군인, 학생들이 열을 맞춰 도열한 모습이 흡사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출정식처럼 결연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가난한 나라가 이룩한 과업에 대한 감격과 자긍심이 묻어났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원전 국가로 진입했다.

고리 1호기는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제작한 580㎿ 가압경수로로 건설됐다. 건설 재원 1억5000만달러는 미국과 영국의 차관으로 조달했는데, 웨스팅하우스가 1차 계통설비를, 영국의 EEW가 2차 계통설비와 발전소 건설 시공을 맡았다. 한국전력이 발주처로서 공정ㆍ품질관리 및 공사비 집행을 수행했고, 현대건설과 동아건설이 하도급사로 참여했다. 후속 원전 건설을 통해 우리 건설산업은 EPC(설계ㆍ구매ㆍ시공) 능력을 확보하게 되었고, 2009년 UAE(아랍에미리트)에 원전을 수출하면서 원전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원전을 담당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은 발전량 기준 세계 6위, 회사 단위로는 세계 2위의 대형 회사로 성장했다.

 



8. 내집 마련의 꿈 ‘신도시 건설’(1989년)

 

 

1980년대 중반 3저 현상(저달러ㆍ저유가ㆍ저금리)으로 최대 호황기를 맞으면서 많은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밀려들었다. 주택가격이 뛰기 시작했다. 정권을 위협할 정도였다. 노태우 정권은 주택 200만호 공급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고, 1989년 4월 서울의 남쪽과 북쪽에 각각 대규모 신도시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것이 바로 제1기 신도시인 분당과 일산이었다.

분당은 ‘수도권의 중심업무지구로 기능하는 자족적인 신도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1991년 9월 준공됐고, 일산은 ‘예술과 문화시설이 완비된 전원도시’라는 목표로 1992년 12월 준공됐다.

제1기 신도시의 건설로 주택가격은 상당한 안정세를 보였다. 특히 분당은 1990년대 후반부터는 ‘천당 밑에 분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신도시를 히트 상품 반열에 올려 놓았다.

 



9. 현수교 기술 자립 ‘이순신대교 개통’(2012년)

 

 

유신이 설계하고 대림산업이 시공한 이순신대교는 전남 여수시 묘도와 광양시 금호동을 잇는 총연장 2260m의 현수교다. 1조700억원이 투입된 이순신대교는 순수 국산기술로 만들어진 현수교이기도 하다.

특히 주경간의 초강도 케이블 시공에는 첨단기술인 ‘에어 스피닝’ 공법이 적용됐다. 5.35㎜ 강선 4가닥을 꼬아 교량 양쪽 끝까지 1600회 왕복하면서 하나의 케이블을 완성하는 기술이다. 두 개의 케이블에 들어간 강선만 7만2000㎞로 지구 두 바퀴에 해당한다. 세계 최대 높이의 주탑(해발 270m) 건설에는 하루에 2m씩 올라가는 ‘슬림폼’ 공법이 사용됐다. 콘크리트 거푸집을 유압잭을 이용해 자동으로 밀어올리는 기술로, 주야간 공사가 가능해 공기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

이순신대교로 세계에서 6번째 현수교 기술 자립에 성공했다. 우리 현수교 기술은 브루나이교(1233억원), 템부롱교(4830억원) 공사를 수주하며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10. 대륙간 해저터널을 뚫어라 ‘터키 유라시아 해저터널’(2016년)

 

 

터키 유라시아 해저터널은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저를 가로질러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5.4㎞의 자동차 전용 복층 터널이다. SK건설이 2008년 터키기업 야피메르케지와 함께 공동 수주했다. 특히 프로젝트 개발에서 운영까지 토털솔루션을 제공하는 BOT(건설ㆍ운영ㆍ양도) 방식으로 사업을 따내 더욱 주목받았다.

작업환경은 매우 까다로웠다. 보스포루스 해저는 최고 수심 110m에, 수압이 대기압의 11배에 달할 만큼 높다. 또한, 지반이 무른 충적층 해저인 데다, 고대 유물과 유적을 보호해야 하는 조건까지 겹쳤다. SK건설은 최첨단 장비와 기술력을 모두 쏟아부었다. 터널굴착장비(TBM)는 직경이 아파트 5층 높이와 맞먹는 13.7m, 총길이 120m, 무게 3430t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2014년 4월 착공한 이 터널은 48개월간의 공사 끝에 2016년 12월20일 개통했다.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이 준공 시기를 계획보다 3개월이나 앞당겨 화제가 되었다.

 

정회훈기자 ho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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