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그때 우리는 - ① 1965년 월남파병과 해외원조

기사입력 2015-04-08 10:08:15

  “월남 파병 결정을 내릴 때, 담배 네 갑을 하루 저녁에 피운 것 같다.”

 베트남 파병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뇌를 지켜본 육영수 여사의 증언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미국의 군사 원조와 장기 개발차관 1억5000만달러를 얻는 대신 베트남에 우리 군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1964년 1차 파병 당시에는 의무병 130명과 태권도 교관 10명 등 비전투 요원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생각보다 장기화를 예고하자 이듬해 미국은 우리나라 정부에 전투병력 파견을 요청했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으로부터 ‘브라운 각서’를 받아낸 후 1965년 8월 전투병력 파견을 결정한다.

 ‘브라운 각서’에는 미국이 우리 군에 장비를 지원하고 보급물자를 한국에서 구매한다는 약속이 담겨 있었다. 전쟁 비용을 줄이기 위한 미국과 더 많은 원조를 원했던 우리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실제로 미국의 군사 원조는 1964년까지 2억달러 미만이었지만, 베트남 파병 이후인 1968년에는 3억8000만달러까지 증가했고, 이듬해 4억8000만달러에 이르렀다.

 ‘월남 파병’ 덕분에 우리나라 건설사들의 해외시장 진출이 가능했다.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 정부는 해외건설에 대한 특별한 지원책이 전무했다. 이 와중에 1950년대 국내에서 미8군 발주 사업을 수행한 건설업체들은 1960년대 ‘월남 파병’과 함께 베트남을 중심으로 미군 공병대가 발주하는 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베트남 전쟁의 미군 발주 사업을 발판으로 국제시장의 감을 익힌 국내 건설사들은 태국과 말레이시아, 필리핀, 파키스탄 등 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했고 1970년대 중동으로 눈길을 돌린다.

최지희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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