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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용의 생활건축 상식>계단의 방향

계단을 이용하여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올라갈 때 계단의 방향이 시계방향이었을까 아니면 반시계방향이었을까? 어떤 이는 힘이 센 오른손에 짐을 들고 올라가려면 반시계방향으로 오르게 되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다른 이는 힘센 오른손으로 계단 난간을 붙잡고 올라가야 하므로 시계방향으로 오르게 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방향이 되었든 목적한 층에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돌아 오르는 방향은 건축가들조차 중요하게 여기지 않거나 아예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돌아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계단의 방향이 정말 아무것도 아닐까? 위급한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피난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간과할 문제만은 아니다.

육상에서 트랙을 도는 방향은 시계방향으로도 돌고 반시계방향으로도 돌지 않는다. 오직 반시계방향으로 돌며 경주한다.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가 트랙을 돌 때 방향에 대한 안정성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고 한다. 이는 실험으로도 확인되었다. 오른손잡이에게는 반시계방향으로 트랙을 도는 것이 좀 더 유리하다. 우리나라는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보다 절대적으로 많지만, 미국 등 서구 사회에는 왼손잡이가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많다. 그럼에도 세계 모든 나라에서 트랙의 도는 방향은 항상 반시계방향이다. ‘규칙’을 정하기 위해서는 어떤 ‘약속’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만족할 만한 완벽한 동의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기에 다수 입장을 수용한다.

이러한 이유는 계단에도 적용해야 한다. 위험상황에서는 이성보다 본능에 따른 움직임이 훨씬 강하게 작용한다. 특히 건물의 위험은 수많은 사람에게 한꺼번에 피해를 준다. 모두 본능에 따라 움직이므로 이때는 이성적인 한두 사람의 주장은 전혀 효력이 없다. 오로지 살겠다는 다수의 동물적 본능만 남는다. 특히 건물에 불이 나면 일단 정전이 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는 아예 멈춰버리고, 수직 동선의 유일한 피난수단인 계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계단실에는 반드시 외부에 면한 창이 있어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더라도 햇빛으로 채광하고 환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이마저 원활하지 않은 밤에 위험을 맞닥뜨린다면 그저 본능만이 삶의 동아줄이 될 것이다. 만약 규모가 큰 건물인 경우 외부에 직접 면해 있지 않은 계단에는 화재에도 손상되지 않는 비상발전기로 전기를 공급해서 계단실에 불을 밝혀 피난을 도와야 한다.

계단은 수직 동선의 통로이며, 지하보다는 지상에 거주자가 더 많게 마련이다. 따라서 피난할 때 지하에서 지상으로 오르는 방향보다는 지상에서 지면, 즉 1층이나 피난층까지 내려오는 방향이 더 중요하다. 이때 운동장 트랙을 도는 원리를 적용한다면 피난하기 위해 계단을 내려오는 방향은 반시계방향이 되고, 반대로 계단을 오를 때는 시계방향이 된다.

이러한 생각도 동선의 구성, 접근성 등을 고려하여 설계하다 보면 필자도 적용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원칙을 지켜 가려 한다. 법으로 정해놓아 강제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사람을 사랑하고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는 건축사의 마음은 설계도면 곳곳에서 향기를 발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건축사 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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